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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나를 견디게 하는 건 아내… 딸… 카메라…

신문고 / 2013.04.08 / 공개글

원문: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578721.html

영화·애니

나를 견디게 하는 건 아내… 딸… 카메라…

등록 : 2013.03.19 20:06수정 : 2013.03.19 21:18

최진웅 촬영감독은 환자복을 입은 모습을 영화인들에게 보여주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사진은 2007년 영화촬영에서 카메라를 잡은 그의 모습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뇌출혈 투병’ 최진웅 촬영감독

‘여자, 정혜’ ‘댄싱퀸’ 등 촬영
운전 도중 의식 잃고 대수술
재활치료에도 회복시점 몰라
제작사 상해보험 미가입으로
은행 대출 통해 치료비 감당

그래도 마침 차의 속도를 줄이던 중이었던 것이 천만다행이라 해야 할까. 서울 도로에서 운전하던 그는 정지신호를 보고 서행하다 한순간 의식을 잃었다. 뒷자리엔 생후 50여일 된 딸(설아)도 있었다. 아내 채은초씨는 “남편의 말이 약간 어눌해지더니 정신을 잃고 앞차와 살짝 부딪혔다. 고속도로였다면 큰 외상사고까지 났을 뻔했다”고 떠올렸다. 사고 직후 영문을 알 길 없던 아내는 “뇌출혈이 심해 생명이 위독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등산으로 건강을 지키던 남편한테 뇌출혈 가족력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최진웅(42) 영화 촬영감독이 뇌출혈 투병생활을 하고 있어 영화계에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그는 17일 경기도 성남 분당제생병원에서 휠체어를 타고 기자를 맞았다. 재활치료를 견디는 힘을 묻자, 아직 말하기가 쉽지 않은 그는 “아내…”, “딸…”이라고 짧게 얘기했다. 그는 <여자, 정혜> <광식이 동생 광태> <구미호 가족> <스카우트>, 한국전쟁 당시 노근리 민간학살을 다룬 <작은 연못>, 지난해 405만명을 모은 <댄싱퀸> 등에 따뜻한 영상미를 담아낸 촬영감독이다.


그는 설경구 주연의 <협상종결자> 보충촬영을 닷새 정도 앞둔 지난해 12월3일 뇌출혈로 쓰러졌다. 이명세 감독이 도중 하차하는 곡절을 겪은 이 영화는 촬영감독까지 병상에 눕는 상황을 겪게 됐다.


8시간이 넘는 1차 대수술, 두개골 접합수술, 중환자실 입원을 거친 최 감독은 현재 운동재활·전기자극 치료 등을 받고 있다. 아내는 “병원에서도 남편이 언제 정상상태가 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본인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는데, 치료시간 외에도 열심히 운동하려 하고 있다”고 했다. 아내는 “(촬영장에 나가지 않아) 요즘 남편 얼굴이 하얘지고 있다”며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들 부부가 잠시 웃음을 지었지만, 사실 많은 영화 스태프들이 그렇듯 최 감독도 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고충을 고스란히 겪고 있다.


지난해 5~9월까지 타이와 한국을 오가며 <협상종결자>의 카메라를 잡은 그는 집에서 거의 쉬지 못할 만큼 휴일·야간근무를 감내하며 촬영에 매달렸다. 본촬영이 끝난 뒤 12월 초부터 재개되는 보충촬영 준비를 시작했다가 자신의 차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것이다. 이번 영화 작업에서 쌓인 피로·스트레스가 촬영장 밖에서 일어난 뇌출혈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 연관성을 두고 의견이 분분할 순 있다.


하지만 더욱 아쉬운 건 뇌출혈 시점에, 씨제이(CJ)가 투자배급한 이 영화의 제작사(JK필름)가 스태프를 위한 산재보험 또는 상해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작사는 본촬영 기간까지만 보장하는 상해보험에 가입했으나, 보충촬영을 앞두고 재가입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최 감독은 뇌출혈 발생 며칠 전부터 보충촬영 콘티작업 회의를 했고, 사고 다음날엔 촬영지 섭외 답사도 갈 예정이었다.


홍태화 영화산업노조 조직국장은 “보충촬영 작업이 이미 시작됐기 때문에 제작사가 보험 가입을 미리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작사 쪽은 “보충촬영이 시작되는 시점에 상해보험에 다시 들려고 했다”고 밝혔다.


최 감독의 아내는 은행대출로 늘어나는 치료비를 감당하고 있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트위터에 최 감독의 쾌유를 응원하며, 후원 계좌번호(860602 04 135797 국민은행·예금주 최진웅)를 올렸지만 영화인들의 손길이 부족한 형편이다. 어쩌면 지긋지긋할지도 모를 카메라를 다시 잡고 싶냐고 물었더니, 최 감독은 영화 현장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를 보고 웃다가 “예…”라고 답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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